지식던전

1장. 세상을 올바르게 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나요? [언어와, 비트겐슈타인] V0.3

paradigmdragon 2024. 8. 22. 20:38

프로젝트와 글 중에서 버전(v)을 붙인 모든 것들은 계속 업데이트할 것임을 명시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같은 상황에 놓여도 같은 관점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전 인류가 생각하는 세상은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이 사람에게 고양이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존재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회피합니다. 이 두 사람의 세상에서 고양이라는 존재에 대한 관점은 다를 뿐 아니라, 그 외의 믿음, 신념, 감정, 기억, 의미 등도 모두 다르게 형성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것을 믿느냐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집니다.

같은 단어 하나에도 서로 받는 느낌조차 다르고 어떨 때는 사용하는 의미가 다르죠.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

당신이 듣고 있다고 믿는 것,

당신이 듣는 것,

 

당신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당신이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당신이 이해하는 것,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설령 그럴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면 안 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간의 세계는 언어와 경험에 사로잡혀 한계 지어져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기란 너무나도 어렵죠. 한 생각을 오랫동안 잡고 있는 것도 어렵습니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해서 금방 사라지기도 하죠. 수많은 지식인과 성인들은 평생을 바쳐 얻어 낸 깨달음과 생각들을 정리해 개념으로 묶었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단어들을 발판, 사다리처럼 이용해 사고를 확장시켰습니다. 휘발하는 생각들을 개념으로 묶어 더 깊은 생각으로, 다른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들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란 개념을 만들었죠, 그전에는 무의식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은 세상을 바꾸고 우리는 이런 개념을 통해 너무 나도 쉽게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은 이름이 없을 때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방사능 가시광선 영역을 넘은 빛의 파장과 전자기파 등 수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죠. 아직도 언어로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신비들, 아직 이름 없는 개념들이 존재하며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언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거기에 더해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과 믿음은 현실을 왜곡시키고 기억 또한 불안전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을 올바르게 보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겁니다. 때문에 신이라 불린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89-1951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1.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1.1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

1.11 세계는 사실들에 의하여, 그리고 그것들이 모든 사실들이라는 점에 의하여 확정된다.

​...

1.13 논리적 공간 속의 사실들이 세계이다

...

2.012 논리에서는 아무것도 우연적이지 않다 : 사물이 사태 속에 나타날 수 있다면, 그 사태의 가능성은 사물 속에 이미 선결되어 있어야 한다.

2.0121 만일 그 자체로 홀로 존립할 수 있을 터인 사물에 어떤 상황이 나중에 가서 걸맞게 된다면, 그것은 말하자면 우연으로 보일 것이다.

사물들이 사태들 속에 나타날 수 있다면, 이 점은 이미 그 사물들 속에 놓여 있어야 한다.

(논리적인 어떤 것은 단지 가능한 것일 수 없다. 논리는 모든 가능성을 다루며, 모든 가능성들은 논리의 사실들이다.)

우리가 공간적 대상들을 결코 공간 밖에서, 시간적 대상들을 시간 밖에서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는 어떠한 대상도 그것과 다른 대상들과의 결합 가능성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내가 대상을 사태라는 연합 속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이러한 연합의 가능성 밖에서 생각할 수 없다.

...

6.43 선하거나 악한 의지가 세계를 바꾼다면, 그것은 단지 세계의 한계들을 바꿀 수 있을 뿐이지, 사실들을 바꿀 수는 없다.

...

 행복한 자의 세계는 불행한 자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다.

6.431 또한 죽으면서 세계는 바뀌는 것이 아니라 끝난다.

 영원이 무한한 시간 지속이 아니라 무시간성으로 이해된다면, 현재에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시야가 한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다.

...

6.44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6.45 세계를 영원의 관점에서 직관하는 것은 세계를 전체-한계 지어진 전체-로서 직관하는 것이다

 한계 지어진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느낌은 신비스러운 느낌이다.

...

6.51 회의주의는, 만일 그것이 물음이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의심하고자 한다면, 반박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무의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심이란 오직 물음이 존립하는 곳에서만 존립할 수 있고, 물음이란 대답이 존립할 수 있는 곳에서만 존립할 수있으며, 또 이대답이란 어떤 것이 말해질 수 있는 곳 에서만 존립할 수 있기 떄문이다   

​6.52 비록 모든 가능한 과학적 물음들이 대답되어 있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삶의 문제들이 여전히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느낀다. 물론 그렇다면 과연 아무런 물음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대답이다.

6.521 삶의 문제의 해결은 이 문제(6.52)의 소멸에서 인지된다

  (이것이, 오랫동안 회의 끝에 삶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은 사람들이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6.522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6.53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자연 과학의 명제들 - 그러므로 철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어떤 것- 이외는 아무것도 말하지말고, 다른 사람이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할 때는 언제나, 그가 그의 명제들에 있는 모종의 기호들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것 - 이것이 본래 철학의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이 방법은 그 다른 사람에게는 불만족스럽겠지만 - 그는 우리가 그에게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는 느낌을 갖지 않겠지만- 이 방법이 유일하게 엄격히 올바른 방법이다.

6.54 ...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의명제들을 넘어 올라간다면 ... 그는 이 명제들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세계를 올바르게 본다.

7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논리-철학 논고는 "1.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시작해서 "7.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로 끝나는 얇은 책입니다.

이 책한권으로 신이라 불렸고 대학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었죠. 후기 철학에서 자신의 철학을 바꾸지만, 

세계를 확정하는 건 일어나는 모든 사실들입니다.

 

1951년 비트겐슈타인은 62세의 나이로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전  "사람들에게 내가 아주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 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합니다. 

세계를 확정하는 건 일어나는 모든 사실들이다.

사실을 만드는 건 인간밖에 없다.